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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Review

[은교] 인간 본연의 숙제인 '상실, 소멸, 쓸쓸함, 허전함, 외로움'에 관한 영화.

by 가온다's BLOG 2012.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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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Culture Review
제목 : [은교] 인간 본연의 숙제인 '상실, 소멸, 쓸쓸함, 허전함, 외로움'에 관한 영화.

지난 달, '은교'라는 제목의 영화가 곧 개봉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이 영화에 대한 정보라면 '주요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 설정부터가 파격적인 영화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이다', '원작 소설이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을 계기로 해서 찾아 읽게된 원작 소설.[각주:1]

 

내가 읽은 작품은 활자판 '은교'가 아닌, 온라인 연재물 '살인 당나귀'였는데.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라면,

 

17세 소녀 은교의 젊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린 70대 노시인 이적요, 그의 상상 속 정사 장면과,

미성년인 17세 소녀와 성인인 소설가 서지우의 현실 속 정사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인터넷판 '살인당나귀'와 같은 정도의 수위와 관점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라고 한다면 '상당한 논란에 휩싸이겠다'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막상 개봉된 은교를 보니.

 

이 영화는 성애영화도 애로영화도 아닌, '인간'을 그린 영화였다.[각주:2]

 

노시인 이적요의 쭈글쭈글해진 육신을 통해서 보여준 것은 '인간 젊음의 상실'.

 

이적요 혼자 마주하게 된 식탁과 그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식은밥 한덩이.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인간 본연의 쓸쓸함과 외로움'.

 

젊음도, 재능 없음도, 타인을 향한 존경과 경외와 질투와 같은 감정들까지도, 죽음이라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보여준, '인간 서지우의 소멸씬'.

 

여러모로 백지 그 자체인 듯 보였던 17세 소녀, 그러나 그 안에도 존재하고 있던 '외로움'의 무게.

 

모든 가지고 있던 것들의 상실과 소멸, 그리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을 '허전함'까지.

 

영화 '은교'의 세 주인공 이적요, 서지우, 은교의 모습 속에는 '인간 본래의 모습', '인간 본연의 숙제들'이 녹아 있었다.

 

- '은교' 영화 티켓 이미지 [각주:3] -

 

 

영화 은교가 보여준 모습들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관념'과 '이성'으로만 생각해보면 많이 불편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었다.

 

사랑의 감정을 가진 70대 노인?[각주:4], 게다가 사랑의 대상이 손녀뻘인 미성년자???[각주:5]

미성년자 17세 소녀의 정사씬?[각주:6]

남의 글을, 그것도 제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승의 글을 자기 글인양 문단에 발표해 버린 글도둑질?[각주:7]까지.

 

그러나 이 명확해보이기만 하는 단편적인 사건들에 이런 저런 감정들을 더하고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린 70대 노인의 입장도,

극한의 외로움을 물리치는 나름의 방법으로 17세 소녀가 선택했던 것도,

이상은 한껏 높으나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은 갖지 못한 부실한 자신의 모습을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매일 자각해야만 하는 무능력한 자의 고통까지도,

동의까지는 할 수 없겠으나,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은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단순히 야한 영화', 혹은 '비윤리적인 영화'라고 치부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또 스펙타클한 재미를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재미없는 영화', '잠오는 영화'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본 영화 '은교'는.

젊음의 상실, 늙어 서서히 소멸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든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 허전함 같은 감정들을 담고 있는 영화였다.

 

 

끝으로, 영화 은교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한 언급도 해봤으면 싶다.

 

배우 김고은.

상당한 노출씬과 정사씬이 있는 영화, 그것도 처음 데뷔작.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은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작품을 매우 잘못 선택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났을 때, 은교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천박하다, 더럽다'[각주:8]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전하는 캐릭터가 아닌, 미숙하고 서툴지만 인간과 사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느껴지는 제법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김고은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다'는 쪽으로 생각도 바뀌었다.[각주:9]

 

배우 박해일.

박해일은 주인공 역할의 세 배우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배우.

그런데, 신인 김고은이 은교라는 역할로 인해서 수혜를 받았다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박해일의 경우엔 역할 때문에 특별히 돋보였다거나 혹은 그 반대로 배우가 역할을 많이 돋보이게 만들었다거나 하는 그런 느낌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상상씬 때문에 박해일이라는 젊은 배우가 '노인 이적요'의 역할까지 맡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겠지만, 아무리 분장을 잘한다고 한들 아무리 박해일의 연기력이 좋다고 한들 나이 자체에서 전해지는 진짜 노인의 느낌까지를 만들어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고, 그런 의미에서 박해일이 70대 노인인 이적요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조금 에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김무열.

배우 김무열은 은교의 세 주인공 중 가장 밋밋한 인물?, 가장 평면적인 인물?인, 서지우 역할을 맡았었는데.

김무열의 연기.

아주 도드라지게 특출나지는 않았지만, 역할과 연기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때문에 그의 연기를 통해서 편안한 느낌도 받을 수가 있었다.


포스트 주소 : http://middlec.tistory.com/179 작성자 : 가온다
- 각주 -
  1. 박범신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연재 발표한 '살인 당나귀'. 이 작품이 책으로 출판이 되면서 제목이 '은교'로 바뀌게 되었고, 이번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 [본문으로]
  2. 전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원작 소설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설 속 이적요와 영화 속 이적요의 은교를 바라보는 감정선에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졌다. [본문으로]
  3. 영화 '은교'의 장면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은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감사합니다' 대신에 '헐'이라고 말하던 이적요의 씬. 그리고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영화임도 잊은 채, 당사자가 아닌 그냥 관객일 뿐임도 잊은 채, 무의식 & 반사적으로 쪽팔림에 손으로 얼굴부터 감쌌던 내 모습...ㅋㅋ [본문으로]
  4. 우리의 관념 속 노인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기에, 왠지 거북하다. [본문으로]
  5.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감정, 영화에서는 소설에서보다는 조금 더 절제하고 억제해서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는 글과 영상이 전하는 강도의 차이를 감안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문으로]
  6. 우리의 법적, 도덕적 기준에 합치되지 않기에, 극도로 터부시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본문으로]
  7. 그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내용 역시, 비난받을만한 행동이다. [본문으로]
  8. 보통의 야한 영화들에서 가장 흔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들. [본문으로]
  9. 다만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이후에 다른 작품들을 해나감에 있어서 이번 역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옷을 성공적으로 잘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기는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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